2009년 02월 12일
20대에겐 뭐가 필요할까.
20대 고만 좀 까라, 마이 무따 아이가
20대들에게 묻는다.
그래, 누구 말마따나 심심하면 까는게 20대다. 그만큼 요즘 20대는 만만한 병신이다. 병신.
예를 몇 개 들겠다.
하나.
내겐 대입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나이든게 아닌가 싶은 동생이 하나 있다. 얘는 드럼을 치는데 4년 가까이 예대나 호원대? 그런 쟁쟁한 - 난 잘 모르겠다만 - 데를 간다고 하는데 운이 안좋은지 번번히 고배를 마셨었다. 그래서 내가 어느날 술쳐먹고 진지하게 물었다. 차라리 홍대에서 구르라고. 음악한다는 새끼가 예대 나오면 곡이 좀 더 예뻐지나? 근데 정작 대답을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런 쪽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200만분의 1 확률이다. 실패하면 적어도 학원 강사라도 해야할 텐데 거기에 써먹을 거라고는 학벌이 전부다. 그리고 정확히 그런말을 하진 않았지만 동생도 내심 그걸 인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둘.
내 주변엔 유난히 애니메이션 관련 교육을 받거나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다. 근데 하나같이 현재는 관련업계에 종사는 커녕 발가락도 담그고 있지 않다. 그나마 만화에 애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동인계로 빠졌고, 일본어를 좀 하게된 친구는 그마저도 관계없는 전화상담업을 하고 있다. 친구중 하나가 자기가 종사중일 때의 이야기를 내게 해준적이 있었다. 매일매일이 야근이고, 식대도 야근수당도 차비도 한 푼 안주는 데 월급이 50만원 미만이다. 그 회사는 국내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였으며, 모두가 단지 업체도 몇 군데 없는데다가 경력을 위해서 거길 들어가 일한단다. 고작 50만원을 받고.
셋.
게임업계가 완벽한 시작지점에 있던 시절 얘기다. 나도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던 수많은 꼬꼬마들 중 하나였다. 내게는 프로그래밍의 재능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거라고는 허접하게 공책에 만들고 싶은 게임따위를 끄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취직을 할 때쯤 되서야 깨달은 것은 이 업계가 현재도 굉장한 과도기에 있으며, 국내에도 솔까말 제대로 일하는 기획자 하나 없는데도 단순 짬밥으로 대가리로 올라가 심심할 때마다 게임 업계에 입문하고 싶어하는 애들을 까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연작까지 만들더라. 그러면서 사정에 가까운 우월감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짜고짜 스타에 디아를 좀 섞고 리니지 좀 섞은 WOW 때려 잡을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애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근데 니들은 안그랬냐?
넷.
아는 분의 자제분이 초중고대-군-칼복졸업 의 교과서 같은, 비록 1년 재수지만, 루트를 걸쳐 27세에 백수가 되었다. 그것도 고려대생 백수. 아무래도 학벌이 학벌이다 보니 대기업만 찌르나 본데 번번이 낙방이다.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들어갔냐는 것을물어보지만 중소기업은 결국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나같아도 고려대면 중소기업은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근데 뭔가 냄새가 난다. 꿈이 없는 냄새.
20대에게 필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걸 제대로 이해 못하는 계층은 20대를 까기에 바쁘다. 왜 우리가 했던걸 니들은 못하냐면서. 같은 일을 해도 20대는 다른 환경을 원한다. 그래서 윗선에서는 군대에서 배워오라고 한다. 이런 미친 새끼들. 20대에겐 위로가 필요하냐 그것도 아니다. 솔까말 따로 떨어져나와서 독립적인 환경을 구축하려고 주변 친구들에게 언제나 이야기 해보지만 한결같이 불안의 시선을 던진다. 더불어 그 얼마 안되는 월급 부스러기 수십년 채워서 집이나 한 칸 마련하려는 새끼들 볼 때마다 한 마디 하게된다. 그리고 그거 니 자식 주게?
사실, 환경이 필요하면 만들면 된다. 결국 사업 하나 벌리면 그만이다. 근데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돈 빌리는 모험. 다만 그 모험이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다. 70년대는 만들면 팔리는 시절이었다. 위대한 박통이 해외 여행도 못가게 했는데다가 국산품 애용운동까지 펼쳤다. 죽기 싫으면 국산 사야했고 그걸 바탕으로 지금의 대기업이 생겼다. 80~90년대, 정 취직 안되면 공무원이나 하던게 불과 IMF 직전까지 시절의 이야기다. 다른 말로 돈 빌려 모험하다 뒤질 것 같으면 도망가서 조용히 갚으며 살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는 말이다. 김대중때는 그 젋은 이들의 모험 환경을 만드려고 벤쳐 기업 정책을 폈다. 벤쳐 - 모험이다. 근데 그 돈은 고스란히 386들 지갑만 불려준 채 사라졌다. 지금의 20대는? 아무것도 없다. 실패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정부는 그 20대에게 삽을 쥐어주려 하고 있다.
덧.
난 결국 게임 회사에 들어왔다. 이글루스에서 그렇게 떠들던 기획자들의 말과 달리 별것도 없더라. 풉.
20대들에게 묻는다.
그래, 누구 말마따나 심심하면 까는게 20대다. 그만큼 요즘 20대는 만만한 병신이다. 병신.
예를 몇 개 들겠다.
하나.
내겐 대입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나이든게 아닌가 싶은 동생이 하나 있다. 얘는 드럼을 치는데 4년 가까이 예대나 호원대? 그런 쟁쟁한 - 난 잘 모르겠다만 - 데를 간다고 하는데 운이 안좋은지 번번히 고배를 마셨었다. 그래서 내가 어느날 술쳐먹고 진지하게 물었다. 차라리 홍대에서 구르라고. 음악한다는 새끼가 예대 나오면 곡이 좀 더 예뻐지나? 근데 정작 대답을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런 쪽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200만분의 1 확률이다. 실패하면 적어도 학원 강사라도 해야할 텐데 거기에 써먹을 거라고는 학벌이 전부다. 그리고 정확히 그런말을 하진 않았지만 동생도 내심 그걸 인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둘.
내 주변엔 유난히 애니메이션 관련 교육을 받거나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다. 근데 하나같이 현재는 관련업계에 종사는 커녕 발가락도 담그고 있지 않다. 그나마 만화에 애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동인계로 빠졌고, 일본어를 좀 하게된 친구는 그마저도 관계없는 전화상담업을 하고 있다. 친구중 하나가 자기가 종사중일 때의 이야기를 내게 해준적이 있었다. 매일매일이 야근이고, 식대도 야근수당도 차비도 한 푼 안주는 데 월급이 50만원 미만이다. 그 회사는 국내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였으며, 모두가 단지 업체도 몇 군데 없는데다가 경력을 위해서 거길 들어가 일한단다. 고작 50만원을 받고.
셋.
게임업계가 완벽한 시작지점에 있던 시절 얘기다. 나도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던 수많은 꼬꼬마들 중 하나였다. 내게는 프로그래밍의 재능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거라고는 허접하게 공책에 만들고 싶은 게임따위를 끄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취직을 할 때쯤 되서야 깨달은 것은 이 업계가 현재도 굉장한 과도기에 있으며, 국내에도 솔까말 제대로 일하는 기획자 하나 없는데도 단순 짬밥으로 대가리로 올라가 심심할 때마다 게임 업계에 입문하고 싶어하는 애들을 까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연작까지 만들더라. 그러면서 사정에 가까운 우월감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짜고짜 스타에 디아를 좀 섞고 리니지 좀 섞은 WOW 때려 잡을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애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근데 니들은 안그랬냐?
넷.
아는 분의 자제분이 초중고대-군-칼복졸업 의 교과서 같은, 비록 1년 재수지만, 루트를 걸쳐 27세에 백수가 되었다. 그것도 고려대생 백수. 아무래도 학벌이 학벌이다 보니 대기업만 찌르나 본데 번번이 낙방이다.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들어갔냐는 것을물어보지만 중소기업은 결국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나같아도 고려대면 중소기업은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근데 뭔가 냄새가 난다. 꿈이 없는 냄새.
20대에게 필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걸 제대로 이해 못하는 계층은 20대를 까기에 바쁘다. 왜 우리가 했던걸 니들은 못하냐면서. 같은 일을 해도 20대는 다른 환경을 원한다. 그래서 윗선에서는 군대에서 배워오라고 한다. 이런 미친 새끼들. 20대에겐 위로가 필요하냐 그것도 아니다. 솔까말 따로 떨어져나와서 독립적인 환경을 구축하려고 주변 친구들에게 언제나 이야기 해보지만 한결같이 불안의 시선을 던진다. 더불어 그 얼마 안되는 월급 부스러기 수십년 채워서 집이나 한 칸 마련하려는 새끼들 볼 때마다 한 마디 하게된다. 그리고 그거 니 자식 주게?
사실, 환경이 필요하면 만들면 된다. 결국 사업 하나 벌리면 그만이다. 근데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돈 빌리는 모험. 다만 그 모험이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다. 70년대는 만들면 팔리는 시절이었다. 위대한 박통이 해외 여행도 못가게 했는데다가 국산품 애용운동까지 펼쳤다. 죽기 싫으면 국산 사야했고 그걸 바탕으로 지금의 대기업이 생겼다. 80~90년대, 정 취직 안되면 공무원이나 하던게 불과 IMF 직전까지 시절의 이야기다. 다른 말로 돈 빌려 모험하다 뒤질 것 같으면 도망가서 조용히 갚으며 살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는 말이다. 김대중때는 그 젋은 이들의 모험 환경을 만드려고 벤쳐 기업 정책을 폈다. 벤쳐 - 모험이다. 근데 그 돈은 고스란히 386들 지갑만 불려준 채 사라졌다. 지금의 20대는? 아무것도 없다. 실패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정부는 그 20대에게 삽을 쥐어주려 하고 있다.
덧.
난 결국 게임 회사에 들어왔다. 이글루스에서 그렇게 떠들던 기획자들의 말과 달리 별것도 없더라. 풉.
# by | 2009/02/12 19:43 | 논평이 아닌 까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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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현상과 전체 그림을 자기 편한 대로 오락가락하게 되면 누구와 이야기를 한다 해도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차이를 표현하자면 0% 와 1%의 차이인데, 이 차이는 1밖에 안되는 작은 차이지만,
그 차이는 불가능과 가능의 거리입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기회 구현을 위한 수단은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그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신 지금은 제도적으로 창업 지원이 훨씬 더 확대되어 있습니다. 무역 대상국도 늘어났고, 해외로 나갈 기회도 훨씬 더 늘어났고, 아무튼 둘러보면 과거에 비해 좁아진 길목도 있지만 더 유리해진 환경도 많습니다. 그걸 하나씩 대조해가면서 언제가 언제보다 좋았는지 비교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겠지요.
시대가 암울하다는 것은 곧 그 시대를 바꿔야 할 책임이 그 시대를 거쳐가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가 합의점을 찾아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